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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3 대림 제4주간 금요일


                                                                                       말라3,1-4.23-24

                                                                                       루카1,57-66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침묵 예찬>

  

- 위대한 침묵 -

 

 

침묵의 동안거에 들어간 겨울 배나무들입니다. 침묵의 계절이 겨울이요
침묵하라 밤의 어둠입니다. 정중동의 침묵이요 침묵 중에 끊임없이 일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위대한 침묵이란 영화도 있듯이 침묵이 수련이 참 절실합니다.

  

이젠 영성생활에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된 침묵입니다. 영성생활의 기초가
 침묵입니다. 침묵이 내적 부요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침묵 부재의 사람들은
 내적 가난뱅이들입니다. 침묵이 사라질 때 삶도, 말도, 생각도 글도
천박(淺薄)해집니다.

  

침묵 역시 능력입니다. 현대인의 특징적 영적 질병인 가만히 머물러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침묵의 부재에서 기인합니다.
오늘은 침묵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침묵예찬입니다.
침묵을 잘해야 기도도 말도 잘할 수 있고 기도와 말을 잘 할 때
 침묵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침묵을 잘 할 때 성무일도와 미사도 잘 드릴 수 있고, 성무일도와 미사를
잘 드릴 때 하루의 침묵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침묵은 개방입니다. 침묵은 깨어있음입니다. 침묵은 소통입니다.
침묵은 친교입니다. 침묵은 사랑입니다. 예전에 써놓은 ‘둥근 달’이란
시를 나눕니다.

 
 

 

-푸르른 밤하늘/휘영청/밝은 달, 하나/온 누리 환히 밝힌다

푸르른 침묵이/휘영청/환한 사랑 둥근 달 하나/낳았구나

푸르른 침묵이! -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는 사랑의 침묵입니다.

침묵은 집중입니다. 침묵은 들음입니다. 침묵은 기도입니다.
침묵은 찬미입니다. 침묵은 감사입니다. 침묵은 순종입니다.
 침묵은 겸손입니다. 침묵은 이해와 배려입니다.

 
 

침묵은 공감과 존중입니다. 침묵은 평화입니다.
침묵은 깨달음입니다. 침묵은 지혜입니다. 침묵의 아름다움입니다.
침묵은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침묵은 모두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침묵입니다.
침묵 안에서 정화되고 성화되고 치유되는 영혼입니다.

  

  

주님을 믿지 못해 즈카르야에게 내려진 벙어리의 침묵은 벌이자
동시에 은총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넓이의 활동에서가 아니라
침묵의 깊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침묵의 깊이에서 발효되어
깨달음처럼 떠오르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즈카르야는 엘리사벳에 화답하여 글 쓰는 판에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아기의 이름을 쓰는 순간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침묵의 깊이에서 빛처럼 떠오른 깨달음의 선물, 하느님의 선물이 ‘요한’이란
이름입니다.

  

마치 불교 고승들의 오도송, 열반송, 임게송 처럼 깊은 침묵의 깨달음에서
선물처럼 솟아난 이름입니다. 좋은 강론이나 시도 이처럼 깊은 침묵의
깨달음에서 태어난 선물입니다.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한 즈카리야는 이어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깊은 침묵의 깨달음에서 탄생하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으니 침묵 중에
하느님 현존을 체험했음이 분명합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말라키의 예언 역시 깊은 침묵 중에 태어난 하느님의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깊은 침묵의 예수님 역시 이 예언이 즉시 세례자 요한을 통해 실현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깊은 침묵 중의 깨달음이 말라키 예언자의 말씀처럼
우리를 깨끗하게, 자유롭게 하고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합니다.

 
 

우리 역시 즈카르야처럼 주님의 은총으로 침묵 중에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깊은 침묵 중에 태어나는 하느님 찬미의
미사요 성무일도입니다. 미사경문을 봐도 모두가 거룩한 침묵에서 태어난
생명과 빛의 말씀들임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우리 마음을 침묵으로 이끄는 미사경문의 기도문이요 말씀들입니다.
성무일도의 시편 역시 모두가 깊은 침묵의 깨달음에 태어난 기도시임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우리를 침묵 중에 하느님 관상 체험으로 이끌어 줍니다.
우리가 할 본질적인 말은 이미 성무일도와 미사를 통해 다 해버렸으니
일상의 깊은 침묵도 수월해 질 것입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주님의 손길은 침묵의 사람들을 보살피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입을 열어주시고
혀를 풀어주시어 우리 모두 당신 찬미에 전념하게 하십니다. 아멘.

 
  
-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